여적죄(與敵罪), 저지르면 무조건 사형?
혹시 여적죄를 들어보셨습니까?
우리나라 형법 제93조는 여적죄를 설명하고 있는데 법조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93조(여적)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실로 무시무시한 조항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형벌의 종류는 사형, 징역, 금고, 자격상실, 자격정지, 벌금, 구류, 과료, 몰수로
총 9종류로 규정되어 있는데,
여적죄의 경우는 무조건 사형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법정형이 사형이라는 것이지 집행과는 문제가 다릅니다.
사형수가 존재하더라도 사형을 실제 집행하는 것은
국가적, 정권적 차원에서 이를 반대하는 집단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집행이 이루어진 사례가 없습니다.
사형제도 자체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많은 견해가 존재하지만
본 포스팅의 직접적인 내용은 아니므로 사형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여적죄로 사형당한 사례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적죄는 한국전쟁 이후 단 한번도 적용된 사례가 없는,
현재로서는 거의 사문화된 조항에 가깝습니다.
6.25 전쟁때는 전쟁이라는 특수성으로 이 조항이 적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정확한 판례나 사례는 검색이 쉽지 않아 소개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각종 언론보도에서 한국전쟁 이후 여적죄를 적용하지 않았다고 소개한 점을 인용하여
본 포스팅에서도 동일하게 소개드립니다.
대체 여적죄란 무엇일까?
다시 한번 형법 제93조를 보겠습니다.
제93조(여적)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일단 적국과 합세하여야 합니다.
단순히 다른 나라가 아닌,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실상 교전상태에 있는 국가라고 보아야 합니다.
반드시 북한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떤 나라와 전시에 준하는 상태에 있다면(국회에서 적국으로 선포한다거나) 여적죄에서 말하는 적국이 될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에 항적하여야 합니다.
항적의 개념은 굉장히 포괄적입니다. 어느 정도의 적극성을 항적으로 볼지는 구체적인 판단기준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고 보아야 합니다. 판례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적을 돕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를 항적으로 볼지 아니면 군사적인 움직임을 같이 해야만 항적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형법에서는 외환유치, 모병이적, 물건제공이적 등 다양한 유형으로 적국을 돕는 경우의 범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 범죄는 여적죄의 하위개념이면서, 실제로 법률을 적용할 때 여적죄는 보충적으로 적용된다고 해석하는 편이 옳습니다. 즉 형법이나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어떤 죄로도 처벌이 불가하지만 적국을 적극적으로 도와 대한민국에 항거한 유형은 여적죄로 다스려질 것입니다.
필요악의 존재
현실에서 여적죄는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특수성으로 인해
보수진영에서 진보진영의 정치인 등이 친북성향을 보이는 행위를 두고 “여적죄로 다스려야 한다”라고 쉽게 얘기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실제 사례가 없기 때문에 존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습니다.
구성요건의 포괄성과 법정형의 극단성이라는 두가지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존립이라는 제1의 가치를 위해 여적죄는 그 존립이 필요악입니다.
법정형을 오직 사형으로만 규정한 것은 그만큼 이 법을 통해 지켜야 하는 가치가 크기 때문이라고 여겨지므로 그 상징성으로도 충분한 존재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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