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

최근 회사에서 50대 부장님이 고3수험생 자녀 이야기를 하면서 중경외시는 가야할텐데..”라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문과한정이지만) 어느순간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라는 마법의 주문같은 서열이 정착되었고 입시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에 진학할때만 해도 그런 단어는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가 생각하던 것과 많은 괴리감을 보여주는 단어라고 할까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대학 서열이 탄생하게 된 과정과 서열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사회학적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합니다.

 

 

대학서열의 요람, 훌리건 천국의 탄생

과거 대학입시는 매우 제한된 정보로 이루어졌습니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양질의 정보도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수능을 마친 대학생들이 어느 대학이 좋은 대학이고, 자기 점수로 어느 대학을 갈 수 있는지는 유명 입시학원에서 만든 배치표를 주로 활용했습니다. 문제는 이 배치표 자체가 객관적인 기준으로 작성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인식은 분명히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학처에서 적극적으로 로비를 벌인 대학들의 배치표 서열은 경쟁학교보다 높게 책정되어 있는 사례가 빈번했습니다.

당시 유명 입학사이트였던 진학사에서는 자발적으로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이 입시 정보를 교환하는 게시판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단순 대학 입시 정보를 나누는 것에 넘어, 스스로의 대학을 홍보하고 타 대학을 깔아내리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객관적인 서열이 존재하지 않았고 공감대도 형성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진학사 사이트에서는 이런 행위를 열광적인 축구팬에 빗대어 훌리건이라고 지칭했고 특정 대학을 홍보하는 행위를 훌짓이라는 용어로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외영소녀라는 닉네임을 가진 한국외대 대학생이 다음카페 훌리건천국이라는 독립적인 공간을 개설했고 상당수가 이 카페로 이동했습니다.

훌리건 천국은 상당히 독특한 컨셉으로 운영되었는데 소위 욕설과 반말이 허용되는 무제한급에 가까운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이런 컨셉의 사이트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디씨인사이드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이런 자유를 바탕으로 입시정보를 얻으러 온 수험생들이 정착하고, 대학초년생이 되어 각자의 대학을 홍보하는 활동을 하고, 1년이 지나 입시정보를 얻으러 온 수험생들이 유입되면서 훌리건천국은 최고 전성기때 회원수 10만을 넘기며 DAUM의 대표카페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당시 훌리건 천국이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대내외적 환경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일단 IT 기기의 발전과 함께 자란 80년대생들은 정보수집에 적극적인 측면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어려서 모뎀을 사용했고 인터넷 전용선을 깔아서 썼으며 팬티엄의 발전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윗 세대가 단순히 학교 담임선생님이 제공하는 배치표를 믿고 그대로 따랐다면 이들은 그것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보다 새로운 정보를 탐색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결국 자발적인 정보수집에 적극적인 이들 세대가 대학 입시정보를 얻기 위해 모인 집단이 훌리건천국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경쟁력 있는 유사 커뮤니티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네이버카페는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이전이었고 입시와 관련해서는 DAUM카페에 수능 재수생 모임이 있었으나 훌리건 천국과는 성격적인 측면에서 많이 달랐으며, 오르비 사이트는 최상위권을 주 타겟으로 한 반면 훌리건 천국은 포괄적인 측면을 띠었습니다. 디씨인사이드의 4년제 대학 갤러리 또한 훌리건 천국에 비하면 후발주자였으니, 훌리건 천국이 당시 유사 커뮤니티에서 얼마나 선점력이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의 탄생

훌리건천국은 입시커뮤니티와 대학생커뮤니티의 성격을 동시에 띠었는데, 대학생들은 주로 본인의 대학을 홍보하고 서열화하여 타 대학을 깎아내리는 일을 일삼았습니다.

그중 워렌을 넘어서라는 닉네임을 가진 한 경희대 대학생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를 매일같이 외치고다녔는데 뜻밖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희대는 중앙대, 외대, 시립대보다는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건국, 동국대 등과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되었습니다. 실제 입시결과는 그러했지만 약간 부유한 대학교, 이미지 좋은 대학교 느낌으로 약간 애매한 취급을 받았던게 사실입니다.

경희대 훌리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환영해 동일한 구호를 외치고 다녔습니다. 재미있는건 다른 대학생들에게도 좋은 환영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중앙대는 그 라인에서 가장 앞서게 되므로 명분이 좋았고, 인지도가 낮아서 하위 대학들에게 욕을 먹던 시립대에게도 나름 나쁘지 않은 자리를 얻게 되므로 여러 대학들이 합심한 듯이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를 외치고 다니게 되었고 (이게 2005~2006년 사이의 일입니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용되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습니다.

그후 사회는 많이 변했습니다. 대학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고 입시정책도 많이 바뀌어 수능의 중요성이 줄어들었습니다. 대학교입학보다는 공무원합격이 중요한 세상으로 바뀌었고 더 이상 입시정보를 위해 훌리건 천국에 유입되는 인구도 줄어들었습니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훌리건천국은 몰락하였고 지금은 30~40대가 주축이 되어 여느 커뮤니티처럼 직장이야기, 재테크이야기를 하는 친목카페가 되었습니다.

 

 

한국사회, 왜 서열에 미쳐있을까

앞서 대학입시와 훌리건 천국의 사례를 소개했지만 이렇듯 무언가에 서열을 매기려는 경향은 특히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집니다. 그러나 이는 대학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좁게는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경향부터 시작하여 직장서열, 아파트서열 등 생활과 관계있는 모든 것들을 서열화하려는 경향은 유독 한국인에게 두드러집니다.

이는 특히 유교권 국가에서 두드러지는데 유교의 위계서열과 집단주의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합리주의와 개인주의로 발달한 서구는 철저히 개인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비교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다니는 대학과 내가 다니는 대학을 비교하기보다 어떤 방법으로 자아실현을 할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나 동양권 국가, 특히 한중일은 이러한 경향이 심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몇 살부터 말을 하는지를 두고 경쟁하고, 유치원집을 비교하고, 학군이 좋은 학교와 그렇지 못한 곳을 비교하고, 대학을 서열화하고, 직장의 등급을 매기며, 결혼상대감의 등급을 정하고, 좋은 동네의 아파트와 그렇지 못한 동네의 아파트를 정의내리며, 타인의 인생이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를 규정합니다.

언어와 문화는 지독히도 깊게 사람의 교육과 내면에 뿌리잡고 있으며 이는 쉽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유교야말로 동양권 문화가 서양에 비해 역사적으로 정체되는 계기였다고 판단하며 최악의 악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추후 이 유교가 미친 악영향에 대해서는 다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찌됐든 큰 뿌리의 흐름에서보면 유교적 문화가 서열을 중시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이는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도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내려박고 있을 것이며 이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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