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를 한번에 알아듣지 못할때면 가끔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인터넷 발달과 함께 자라나면서 항상 저는 그 중심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따라가기가 좀 어려운걸 느낍니다. 꾸안꾸(꾸민 듯 안꾸민 듯)라거나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와 같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유행어들은 이제 누가 설명해주지 않으면 영 알아듣기가 힘듭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변에서 그런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겠지요?

반면에 어떤 말들은 인터넷 신조어가 출발이었으나 우리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이기도 합니다. 특히 너무 깊이 침투한 탓에 이제는 티비 예능과 같은 대중매체에서도 빈번히 나타나고 대충 그 뜻을 짐작할수 있지만 그 어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단어들이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낯선 신조어가 아니라 대부분 그 뜻은 알고 엄청나게 많이 사용하지만 어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4가지 단어(짤방, 리즈시절, 듣보잡, 신박하다)의 어원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짤방

흔히 이미지 파일이나 그림파일을 짤방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의미는 원래 “짤림방지”의 줄임말이었습니다. 어원은 무제한 자유를 표방하는 국내 최대 커뮤니티 중 하나인 디시인사이드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원래 디시인사이드는 디지털 카메라 인사이드(Digital Camera Inside)입니다. 즉 디지털 카메라 전문 사이트였고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들을 올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사이트였습니다. 주제에 맞게 사진을 올리고 공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한 디시인사이드는 2000년대 초 인터넷의 발달과 B급 문화가 접목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습니다. 주제별로 수많은 갤러리가 생겨났고 사진과 관계없는 잡담과 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디시인사이드는 공식적으로는 디카로 찍은 사진을 올리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사진이 없는 글들은 종종 관리자에 의해 삭제되곤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디씨 유저들은 본인들의 글이 삭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본문과 아무 상관없는 사진을 올리고 자기하고픈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첨부한 사진은 짤림방지용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줄여 다시 짤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미가 확대되어 이미지 파일이나 그림 등을 통칭하여 짤방 혹은 짤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짤방 또는 짤이라는 단어가 다른 단어와 합쳐서 합성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혐오스러운 이미지는 혐짤, 움직이는 이미지(주로 GIF파일)는 움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타인이 올린 이미지 파일을 저장하거나 모으는 행위를 짤줍(짤을 줍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리즈시절

굳이 뜻풀이를 하지않아도 리즈시절이 전성기를 의미한다는 것쯤은 모두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원을 따져보면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박지성 선수가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면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특히 10~20대 남성들을 주축으로 새벽 중계를 챙겨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며 축구 커뮤니티가 활발해졌습니다. 당시 다음 카페 최대 축구 커뮤니티인 ‘아이러브사커’에서는 수많은 글들과 축구 동영상들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개씩 쏟아져나왔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입단했을 무렵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는 ‘앨런 스미스’라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남성적인 외모로 국내팬들을 중심으로 꽤 높은 인기를 누렸으나, 주전과 후보를 오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원래 그는 공격수로 영입되었으나 당시 웨인루니, 반니스텔루이라는 특급 공격수들에게 밀려있었고 루이사하라는 걸출한 선수 때문에 백업공격수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게되어 결국 수비형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를 전전하다가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쓸쓸히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사실은 과거에 국가대표로 선발될 만큼 꽤 촉망받는 선수였는데 바로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시절이었습니다. 18세에 데뷔하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적하기까지 꽤 훌륭한 공격수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런 사실을 알고 있던 한 극성팬이 매일같이 “앨런 스미스 리즈 시절”이라는 제목으로 리즈 유나이티드때 공격수로 활약한 동영상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게시했습니다. 하도 많이 올리자 몇몇은 동조하여 같이 올리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언제까지 리즈 시절 타령이냐며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 후 의미가 확대되어 누군가의 전성기를 뜻할 때 리즈시절이라는 말을 쓰게되었습니다. 벌써 1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자주 쓰는 말이며, 예능 자막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듣보잡

듣보잡을 듣보잡 이외의 단어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름도 없는 것, 존재감도 없는 것 정도로 통용되는 이 단어는 다음 카페 훌리건천국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몇몇 인터넷상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대학”을 듣보잡의 어원이라고 하나, 정확한 어원은 “듣도보도 못한 개잡훌”에서 출발했습니다. 당시 고려대에 재학중이라고 알려진 “진보소녀”라는 닉네임을 가진 회원이 자신을 공격하는 회원들에게 같은 내용의 조롱성 댓글을 남겼는데 그것은 바로 “넌 듣도보도 못한 개잡훌인데?”라는 단어였습니다. 즉 본인은 그 카페에서 상당히 유명한 축에 속했는데 유명하지도 않은 니 주제에 뭘 이래라 저래라 하냐, 라는 조롱성이 담긴 의미였습니다.

 

 

의미는 금방 파생되어 지방사립대를 비하하는 용어로, 그리고 다시 사람과 사물에 대한 것으로 무한히 확장되었습니다. 지금은 “듣보잡 연예인”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신박하다

흔히 기발하다, 라는 뜻과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이 단어는 마치 원래부터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우리가 일상속에서 자연스럽게 쓰이고, 꽤 나이가 드신 어른들까지도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사실 어원은 디씨인사이드 와우갤러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와우(WOW)는 블리자드사에서 만든 전략게임인 World of Warcraft를 줄여 부르는 말인데, 중 “성기사”라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특성으로 인해 와우갤러리에서는 “성기사”를 굉장히 비하하고 욕하는게 일상이었는데 그게 심해지자 “성기사”라는 언급을 하는 것만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성기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성박휘(성바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즉 기사가 아니라 바퀴벌레와 같다는 의미였습니다.

당시 성기사는 징벌기사, 보호기사, 신성기사로 분류할 수 있었는데 이를 줄여 징기, 보기, 신기로 불렀습니다. 앞서 말한 기사를 박휘로 부르기 시작하면서 징기를 징박, 보기를 보박, 신기를 신박이라고 부르게 되는 웃지 못할 변형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신기는 본디 신성기사를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그 줄임말이 원래 “신기”였습니다. 우리가 “신기하다”라고 할때의 단어와는 동음이의어였기 때문에 일부 유저들이 “신기하다”를 “신박하다”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어감이 좋아 폭발적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확산되어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언어는 필연적으로 그 사회를 반영합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신조어들도 그 내막을 보면 사회현상이나 분위기, 암묵적인 세태의 결과물입니다. 한글을 파괴하는 야민정음, 극단적인 줄임말들이 유행하고 단어를 뒤집는 유행어가 하루가 다르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존 질서를 해체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더욱 빠름을 선호하고 차별화를 시도하는 움직임들, 이들이 이끌어갈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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