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있는 곳에 세금 있다

누구나 한번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라는 유명한 격언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소득이 발생한 부분에는 당연히 세금을 내야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소득이 발생한 곳에 국가가 강제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의미까지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에 우리는 잘 학습되어 있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은 불법적인 탈세행위이고 밀리지 않고 제때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신성한 의무라며 체득하여 살아오고 있습니다.

미국 100달러 지폐의 인물이자 건국의 아버지 중 한명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죽음과 세금만큼 이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없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옛날 공자의 이야기에서는 가혹한 세금이 호랑이보다 훨씬 무섭다고 말하는 여인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일생은 세금과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사먹을때는 부가가치세를 지불하고 월급을 받으면 소득세와 지방소득세를 냅니다. 아파트를 사면 취득세를 내야하고, 아파트를 팔면 양도소득세를 내야합니다. 주식을 하면 증권거래세를 내야하고, 우리가 마시는 술값에는 주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죽기전에 남기는 상속에도 세금이 붙습니다. 가히 우리 삶은 세금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역사를 통해 그것은 더 좁은 범위로 파고들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세금이 만든 잔혹한 풍습, 자기 아이를 죽이는 마비키(솎아내기)

마비키를(まびき) 우리말로 번역하면 “솎아내기” 정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대체 무엇을 솎아낸다는 의미일까요? 아마 제목에서 짐작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일본 에도시대에는 당연히 피임이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큰 전쟁이 없이 평화가 지속되던 시기였고 당연히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어야 하는 때였는데, 이상하게도 당시 일본 가정에서는 세자녀 이상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바로 부모들이 아이를 죽이는 풍습, 마비키 때문이었습니다.

“일본의 여성은 기를 여유가 없으면 아기의 목과 다리를 눌러 죽여버린다”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본인이 저술한 「일본사」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에도시대의 학자인 사토 노부히로에 따르면 약 10만명의 농가가 있는 지역에서 매년 3~4만명의 아이가 이런 식으로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메이지 유신 시대 이후에 이를 살인죄로 규정하면서 서서히 사라질때까지 특정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일본전역에 걸쳐서 널리 있었던 풍습이라는 점이 꽤나 충격적입니다. 당시 7세 이하의 아이들은 “신의 아이”라고 생각했고, 마비키는 “살해”가 아닌 “아이를 신에게 보내는 것”이라는 미신적인 인식으로 행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이 죄책감이 전혀 없었다거나 나쁜 풍습이라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악습이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은 도저히 아이를 더 키울 수 없는 백성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요인이었고, 여기에는 바로 지독하고 무서운 세금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과도한 수탈로 더는 아이를 키울수 없는 상황에서 다같이 굶어죽기보다 영아살해라는 끔찍한 방법이라는 필요악적인 행위가 하나의 관습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가혹한 수탈과 기근까지 겹쳐 식인(食人)이 있었다는 기록까지 남아있습니다. 지배계층이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낮췄더라면 이런 일이 전국적으로 횡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 세금을 낮추지 않았고,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잦은 민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또다른 마비키는 없을까?

마비키와 같은 반인륜적인 행위를 옹호하거나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필요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다고 하지만 미개하고 있어서는 안되는 악습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그런 파렴치한 악습이 생겨난 배경에는 악마같은 존재였던 과도한 세금이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데에 세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적정 수준의 세금이 걷혀지고, 잘 쓰여지고 있는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있습니다. 국가예산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민이 부담해야 할 조세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천문학적인 돈들이 올바르게 집행되고 있을까요? 이는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근로소득자의 부담으로 온전히 돌아가고 있으며, 그들은 계속해서 근로해도 더 개선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뿐입니다. 국민의 돈으로 정치인들은 생색을 내고, 소수 이익집단에 혜택을 주는 용도로 활용되고 불필요한 일회성 사업을 위해 소모되기도 합니다.

루이 16세를 처형한 프랑스 혁명의 배경에는 어마어마한 과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언제까지 국민들은 고통받아야 할까요? 아마도 시간이 지날수록 세금은 더 늘어날 것이며,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던 명목의 세금들도 계속 생겨날 것입니다.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하지 않아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오늘날의 모습이 마치 에도시대 마비키가 있던 시대를 떠올리는건 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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