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절정에 이르던 3~4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재택근무가 앞다투어 시행되었습니다.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그리고 업종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시기는 아마 재택근무라는 단어가 처음 생겨난 이래 역사상 가장 많은 재택근무가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 기사에 따르면 5곳 중 2곳이 이미 재택근무를 실시중이거나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하며, 공공기관의 경우는 아예 30%씩 재택근무를 강제하도록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재택근무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재택근무가 말이 되느냐며 반신반의했지만 새로운 근무형태를 통하여 굳이 회사를 가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가 종식되거나 완화 추세를 보임에 따라 임시방편이었던 재택근무는 중단되고 다시 예전과 같은 원래의 근무형태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험을 통해 “재택근무도 나름 괜찮네”라는 생각을 엄청난 수의 국민들이 갖게 되었다는 데에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이 경험은 유연근무제에 대한 근본적인 틀과 변화의 속도를 바꿀 것입니다. 유연근로제는 2000년대 초부터 논의가 되어왔으나 실상 도입은 미진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마저도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시차출퇴근제나 선택적 근무시간제 등 시간이나 요일을 어느정도 조정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러한 것은 유연근무제가 삶과 일의 균형, 업무의 효율성 측면보다는 육아활동을 하는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나 여성 노동력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논의가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몇 년전부터 정부에서도 삶의질이나 워라벨을 꾸준히 강조하면서 유연근무제를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유연근무제는 아이가 있는 여성만 쓸 수 있는 제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인식이 이렇다보니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직장인맘들 역시 눈치가 보여 유연근무제를 쉽게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대되었을 때, 육아를 병행중인 직장인 맘은 환영했고 그 외 사람들은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를 통해 이제 유연근무제는 육아를 위한 제도가 아니라 삶의질과 업무의 효율성 때문에 필요한 제도라는 것을 전 국민이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통계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유연근무제를 적용하는 근로자 비율이 점차 확대되어 2019년에는 10%까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 유연근무제의 대부분은 말씀드린 것처럼 시차출퇴근제나 선택적 근무시간제 등이 대부분이며 정책적으로 이를 확대 시행하고 있는 공공기관을 제외하고나면 그 수치는 차마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일 것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재택근무 비율은 아마도 1%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출처:kt

기존 시간선택제, 선택적 근무시간제 등도 유연근무의 한 형태이지만 사실 재택근무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근무시간을 앞뒤로 몇시간 당기거나 늘리거나 하는 시간선택제 등은 “시간을 조정하는” 수준에 그치는 현실이었습니다. 즉 여전히 공간적으로는 회사에 예속되어 있으며 경직된 조직구조 안에서는 단순히 출퇴근 시간만 변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재택근무는 시간이 아니라 “공간을 조정하는” 점에서 파격적입니다. 즉 전자가 시간형 유연근로제였다면 후자는 공간형 유연근로제인 것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대면보고와 회의 중심이기 때문에 공간형 유연근로제가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현실이 이런데 제도가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제도와 문화는 현실에 맞게끔 바뀝니다. 토요일에 출근하던 것이 당연시되던 그 시절, 주5일 도입제의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이 파격적인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수많은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요구하는 커다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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