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극을 보면 의금부에서 죄인을 꽁꽁묶어 곤장을 치거나 때로는 가혹한 고문을 동반하여 자백을 받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가혹한지 때로는 자백을 받아내기 이전에 고문을 받다가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지켜보면 과연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거짓 자백을 하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백을 받아내면 그 사람이 유죄가 되는걸까요?

물론 조선시대처럼 현대에서 경찰이나 검찰이 고문을 통해 수사하여 자백을 받아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비인도주의적인 수단은 동원될 여지가 있고, 이를 견디지 못하고 거짓자백을 할 개연성은 지금도 충분히 있습니다. 연이은 밤샘 취조로 체력적으로 지친 상황, 그리고 심리적으로 몰린 상황에서 누군가는 수사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차라리 경찰, 검찰의 의도대로 거짓자백을 하기도 합니다. 강압적으로 자백을 받아낸다는 점에서 본질은 조선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 경우에 그 사람은 유죄가 되는걸까요?

 

 

이런 비인도적인 일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자백의 보강법칙이라는 대원칙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헌법 제12조 제7항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폭행·협박·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에 의하여 자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또는 정식재판에 있어서 피고인의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310조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

 

즉 쉽게 말하면 다른 증거가 없고 자백밖에 없는 경우에는 이 자백을 증거로 삼아 그를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말한 조선시대나 현대 강압적인 수사과정으로 얻어낸 자백을 인정한다면 인권은 유린되고 평범한 국민 누구나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될 수 있는 끔찍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백만 했다고 범죄자가 되지 않고 이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 다른 증거가 나와야 자백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B를 살해했다고 자백했으나 다른 물증이나 어떠한 정황증거도 없는 상황이라면 이를 이유로 A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습니다. A의 자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 즉 현장에서의 지문이나 족적, 흉기의 소지유무, CCTV 등 자백을 뒷받침할만한 객관적으로 충분히 납득할만한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A의 자백 또한 증거로 인정될 수가 있습니다.

한편 자백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가 있더라도 그것이 적법하게 수집된 것이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사례에서, 만약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에 A의 지문이 묻어있고 A가 자백을 했다면 유력하게 그가 유죄로 볼수 있는 증거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 흉기를 수집하는 과정이 적법한 절차없이 수집되었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경찰이 영장없이 흉기를 압수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사실관계만 본다면 A는 살인죄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만 적법한 절차 없이 수집된 흉기는 법원에서 증거로 채택될 수 없고, 따라서 A의 자백이 있더라도 그것을 보충해줄만한 증거가 없는 셈이 되어 결국 A를 살인죄로 처벌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불합리한 결과라고 볼수 있지만 그만큼 국가공권력 등 수사과정이 애초에 적법하지 않다면 더 큰 위험성을 초래할 수가 있으니까요.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인정한다면 조작된 증거까지도 가능할 여지가 있고 이는 선량한 일반 국민들이 범죄자로 몰리는 일도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때때로 신문기사나 뉴스를 보면 상식적으로 불합리한 판결들이 나는 경우가 많고, 국민들은 이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체를 잘 뜯어보면 판사로써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사는 법에 정해진대로 판결을 해야하고, 만약 그 이상의 재량을 허용한다면 판사가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하여 선량한 국민들을 범죄자로 재판할 가능성이 늘어나는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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